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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늘 1mg</title>
    <link>https://oneul-1mg.tistory.com/</link>
    <description>oneul-1mg 님의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16 Aug 2026 23:12: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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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오늘 1mg</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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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title>
      <link>https://oneul-1mg.tistory.com/5</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 기원전 63년 9월 23일 ~ 서기 14년 8월 19일)는 로마 제국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7년 ~ 서기 14년)이다. 또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초대 황제이기도 하다. 본명은 고라키!였으나, 카이사르의 양자로 입적된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로 불렸다. 기원전 44년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외할머니 율리아 카이사리스의 남동생이자 자신의 외종조부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유언장에 따라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그 후계자가 되었다.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군사 정권인 제2차 삼두 정치를 열었다. 삼두 정치를 행한 집정관의 한 사람으로서 옥타비아누스는 효과적으로 로마와 속주[1]를 지배하였고, 세력을 모아 히르티우스와 판사가 사후 집정관에 재선되었다. 이후 제2차 삼두 정치도 깨지는데 다른 집정관이었던 레피두스는 유배되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뒤 자살하였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제2차 삼두 정치의 붕괴 후 옥타비아누스는 대외적으로 로마 공화국을 부활시키고 정부에 관한 권한은 로마 원로원에게 주었으나, 사실상 권력을 독점하였다. 유일한 통치자가 다스리지만 대외적으로는 공화국 형태인 정치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껍데기만 공화국인 이 나라는 훗날 로마 제국으로 불린다. 황제권은 옥타비아누스 이전에 로마를 통치했던 카이사르와 술라의 독재권과는 전혀 달랐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로부터 &amp;ldquo;독재권을 부여받았지만&amp;rdquo; 거절하였다.[2] 법에 따르면 &amp;lsquo;존엄자&amp;rsquo;(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은 평생 동안 권력을 가지도록 하였고 &amp;ldquo;호민관 권한&amp;rdquo;(tribunitia potestas)을 가졌으며 기원전 23년까지 집정관을 역임하였다.[3] 아우구스투스는 재정적인 성공과 원정에서 얻은 물자, 제국 전체에 걸쳐 맺은 여러 피호 관계(clientela), 군인과 재향 군인의 충성, 원로원에서 부여한 여러 권한과 명예[4]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다.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로마의 정예병 로마 군단 다수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원로원에게 군사적인 위협이 되어 원로원의 결정을 억압하였고,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여 원로원의 정적들을 제거하여 원로원이 자신에 복종하게끔 하였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우구스투스의 통치는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계속되는 변방에서의 전쟁과 황위를 둘러싼 1년의 내전(기원후 69년)에도 불구하고, 지중해 세계는 두 세기가 넘게 평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영토를 넓혔으며 제국의 국경과 동맹국을 보호하였고 파르티아와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는 로마의 조세 체계를 개선하였고 파발을 위해 육로 교통망을 구축하였으며 상비군과 소수의 해군 그리고 황제의 친위대인 로마 근위대를 창설하였다. 또한 로마에 경찰청과 소방청을 설치하였고 로마 시의 상당 부분을 재개발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죽기 전에 자신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은 《아우구스투스 업적록》로 불리며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서기 14년 그가 죽은 직후, 원로원과 민회는 아우구스투스를 신으로 선포하였고 로마인들의 숭배를 받았다.[5]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이 그의 황제명인 &amp;lsquo;아우구스투스&amp;rsquo;와 &amp;lsquo;카이사르&amp;rsquo;를 이름으로 썼다. 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quot;여덟 번째 달&quot;(Sextilis)을 &quot;아우구스투스&quot;(Augustus)로 바꾸어 불렀다. 그의 황위는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물려받았다.&lt;/p&gt;</description>
      <author>오늘 1mg</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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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eul-1mg.tistory.com/5#entry5comment</comments>
      <pubDate>Wed, 10 Dec 2025 23:11: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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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별자리 페가수스자리</title>
      <link>https://oneul-1mg.tistory.com/4</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페가수스자리 IK(바이어 명명법 : IK Pegasi) 또는 HR 8210은 페가수스자리에 있는 쌍성계이다.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밝으며, 태양계에서 150 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페가수스자리 IK A는 A형 주계열성이며, 광도가 맥동하는 방패자리 델타형 변광성이다.[7] 동반성인 페가수스자리 IK B는 무거운 백색 왜성, 즉 항성 진화의 끝에 다다라서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더 이상 생산해 낼 수 없는 항성이다. 두 별이 서로를 공전하는 주기는 21.7일이며, 둘 사이의 평균 거리는 3,100만 킬로미터(0.21 AU[주 1])로 태양과 수성 사이 거리보다 가깝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페가수스자리 IK B는 초신성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항성들 가운데 태양계에서 가장 가깝다. IK A가 적색 거성으로 진화하기 시작할 때 쯤이면, IK A의 반지름이 커지고 IK A의 팽창된 기체 외피층이 IK B에 강착될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되면 IK B는 찬드라세카르 한계인 1.44 M☉에 도달하여 폭발이 일어나 Ia형 초신성이 될 것이다.[12]&lt;/p&gt;</description>
      <author>오늘 1mg</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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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eul-1mg.tistory.com/4#entry4comment</comments>
      <pubDate>Wed, 10 Dec 2025 16:27: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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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디스토피아 사회 영국 런던이 배경인 영화</title>
      <link>https://oneul-1mg.tistory.com/3</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quot;브이 포 벤데타&quot;(영어: V for Vendetta)는 제임스 맥테이그가 감독하고, 조엘 실버와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amp;middot;각본하여 2005년 제작, 2006년 개봉한 SF 영화이다. 이 영화는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가 만든 그래픽 노블 &quot;브이 포 벤데타&quot;를 각색한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에 디스토피아 사회가 된 영국의 런던을 배경으로, 영화는 정치적 전복과 동시에 개인적 복수를 꾀하는 정체불명의 반체제 운동가 브이를 따라 진행된다. 주연으로는 브이 역은 휴고 위빙, 이비 해몬드 역은 내털리 포트먼, 서틀러 대법관 역은 존 허트, 핀치 경감 역은 스티븐 레이가 연기했다.[2][3]&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워너 브라더스는 원래 이 영화를 제400회 가이 포크스의 밤 전날인 2005년 11월 4일에 개봉하려 했으나 연기되어 2006년 3월 17일에 개봉했다. 전 세계적 흥행 수익은 1억 3천2백만 달러 이상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며, 평론들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원작자 무어는 자신의 만화를 영화화한 다른 두 영화 &quot;프롬 헬&quot;과 &quot;젠틀맨 리그&quot;에 실망한 뒤, 영화를 보는 것을 거부하고 영화에서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실제로 영화 크레딧에는 데이비드 로이드의 이름만 올라가 있다. 영화 제작자들은 원작에 나오는 무정부주의적 테마들과 마약 관련 내용들을 삭제했고, 자기들 생각에 2006년의 관객들에게 더 와닿을 것 같은 것으로 정치적 메시지도 변경했다.&lt;/p&gt;</description>
      <author>오늘 1mg</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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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Dec 2025 13:59: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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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A 잉글랜드의 마지막 축구 경기</title>
      <link>https://oneul-1mg.tistory.com/2</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1923년 잉글랜드 FA컵 결승전(1923 FA Cup Final)은 1923년 4월 28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볼턴 원더러스 FC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간의 1922~23년 FA컵의 마지막 축구 경기다. FA컵(Football Association Challenge Cup, 축구 협회 챌린지 컵) 같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의 초기 컵 대회의 대표적인 표본으로 뽑히는 이 경기는 1923년에 완공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첫 축구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우승팀에게 경기 후 트로피를 수여하기 위해 관중석에 자리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각 팀은 결승전까지 5라운드씩을 치렀다. 볼턴 원더러스는 3라운드 2차전부터 마지막 3경기에서 데이비드 잭이 경기마다 홀로 한 골씩 터뜨리고 팀은 무실점으로 골문을 틀어막으며 모두 1:0 승리를 거두며 결승전에 올랐다. 하위 리그 소속이었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는 풋볼 리그 2부 이하의 하위리그 팀들을 상대했는데, 이 때는 잉글랜드 축구에서 축구 팀들을 실력 별로 여러 리그로 나누기 시작한 시기였다. 웨스트 햄은 4라운드에서 사우샘프턴 FC 3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간신히 물리쳤지만 그 다음 준결승전에서는 5골을 퍼부으며 더비 카운티 FC에게 완승을 거두고 결승전에 진출했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대회 결승전은 축구 자체보다 125,000명 정도 되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수용인원을 훌쩍 뛰어넘은 엄청난 인파로 인한 큰 혼란 때문에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추정 300,000여 명의 관중들이 입장하면서 경기장의 테라스까지 꽉 차서 사람들이 넘칠 정도였고, 관중들은 선수들이 경기하는 경기장 안 피치까지 내려가기까지 했다. 말에 올라탄 경찰들이 경기 시작을 위해 피치 위의 관중들을 올려 보내려고 투입되었는데, 이때 경찰이 탄 말 중 밝은 색의 말이 이 날의 상징이 되었다. 결승전 경기는 관중들이 피치를 둘러싸고 서있는 동안 45분 늦게 시작했다. 경기에선 시작하자마자 웨스트 햄이 강한 공격을 시도했으나 이후 볼턴이 강팀의 위력을 과시하며 경기를 지배하고 2:0 승리를 거뒀다. 세 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던 볼턴의 데이비드 잭이 경기 시작 2분 만에 상대 수비 공백을 틈타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전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잭 스미스가 추가골을 넣어 승리를 장식했다. 결승 경기 전 행사 때문에 영국 하원에서 논쟁이 있었고 다음 결승 경기들을 위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amp;ldquo;백마 결승전&amp;rdquo;(&amp;ldquo;White Horse Final&amp;rdquo;)으로 불리며 2007년에 새로 건축된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백마교(White Horse Bridge)를 지어 이 경기를 기념하기도 한다.&lt;/p&gt;</description>
      <author>오늘 1mg</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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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eul-1mg.tistory.com/2#entry2comment</comments>
      <pubDate>Wed, 10 Dec 2025 11:37:5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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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now</title>
      <link>https://oneul-1mg.tistory.com/1</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50 Words for Snow》는 잉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시의 열 번째 정규 음반이다. 2011년 11월 21일 피시 피플과 안티 레코드를 통해 발매하였다. 2011년 5월 《Director's Cut》 이후 약 반 년 만에 발표한 음반이자 2005년 《Aerial》 이후 6년 만에 발표한 신곡들이 수록된 음반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Director's Cut》의 작업을 끝낸 부시는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생각과 음반 작업을 하면서 떠올린 아이디어를 가진 채 분위기를 이어가며 새 음반을 작업하기 시작하였다. 부시는 스튜디오로 돌아가기 전 대부분의 노래를 만든 후 집 안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했다. 《Aerial》과 비슷한, 자연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음악을 만들던 부시는 처음에 주제를 겨울로 잡았지만, 후에 눈에 대한 음반으로 주제를 변경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눈에 대한 콘셉트 음반인 《50 Words for Snow》는 음악적으로는 아트 팝, 챔버 팝과 재즈, 전자 음악 및 신고전주의 음악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모든 수록곡은 부시가 홀로 작사&amp;middot;작곡 및 프로듀싱하였으며, 엘튼 존, 스티븐 프라이, 앤디 페어웨더 로우와 부시의 아들 앨버트 매킨토시 및 다양한 음악가가 참여하였다. 부시의 다른 음반보다 피아노 연주에 초점을 두었으며, 노래의 평균 길이가 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50 Words for Snow》는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여러 매체의 연말 및 연대말 음반 결산에 이름을 올렸다. 상업적으로도 영국 음반 차트에서 5위에 진입하고, 다른 여러 국가의 음반 차트에도 순위권에 올랐으며, 영국 축음기 협회로부터 골드 인증을 받았다. 리드 싱글이자 유일한 싱글인 〈Wild Man〉은 영국 싱글 차트에 73위에 올랐다. 홍보를 위해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그림자극 등을 활용한 뮤직 비디오를 세 편 공개하였으며, 사우스 뱅크 스카이 아츠 어워드에서 최우수 팝 음반 부문을 수상하였다.&lt;/p&gt;</description>
      <author>오늘 1mg</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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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s://oneul-1mg.tistory.com/1#entry1comment</comments>
      <pubDate>Thu, 4 Dec 2025 13:05: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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